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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재킹 : 폐쇄 공간 스릴러, 실화 재구성 방식

by 꼬모성 2025. 6. 11.

영화 하이재킹 포스터

 

2025년 개봉한 김성훈 감독의 <하이재킹>은 1970년대 항공기 납치 사건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서스펜스 스릴러와 휴먼 드라마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항공 영화라는 장르적 도전을 감행했으며, 실화 재구성 방식, 공간 활용, 리듬 설계 측면에서 흥미로운 연구 사례로 꼽힌다.

간단한 줄거리

1971년 3월. 대한항공 소속 YS-11기 국내선 여객기가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강릉으로 향한다. 기내에는 승무원들과 승객 51명이 탑승해 있었다. 비행 도중 갑자기 한 남성 승객이 폭탄을 소지한 채 조종실을 점거하며 기수를 북쪽으로 돌릴 것을 요구한다. 납치범 강필수(하정우)는 북한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는 중이며, 승무원 옥자(윤아)는 침착하게 승객들의 공포를 누그러뜨리고 대응을 모색한다.

기내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이고, 조종사 서재민(성유빈)과 옥자는 협력해 위기를 타개하려 한다. 지상에서는 정부와 항공사, 가족들이 긴박하게 대응책을 논의하지만, 교신은 단절된다.결국 옥자와 승무원들은 기지를 발휘해 기내 장비를 교란시키고, 납치범과 협상을 벌이는 전면전에 나선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비행기의 행방과 승객들의 운명을 긴장감 있게 끌고 간다.

실화 재구성과 서사 구조의 장르적 특징

영화전공자 입장에서 <하이재킹>의 가장 두드러진 성취는 실화 재구성의 전략이다. 영화는 기록에 남아있는 사건 정보와 창작적 상상력을 조화시켜, 단순한 사건 재현물이 아닌 감정 중심 서사로 승화했다.

서사는 기본적으로 폐쇄 공간 스릴러의 구조를 따른다. 1막에서 평온한 일상 → 2막에서 비행기 납치 및 위기 고조 → 3막에서 인간적 용기와 연대 → 결말로 향한다. 무엇보다 승객과 승무원의 심리적 변화가 세심하게 묘사되며, 실화 영화가 자칫 빠지기 쉬운 사건 중심 서사에 감정적 깊이를 부여한다.

또한 여성 승무원 주인공(윤아) 중심의 시선 설계는 젠더적 의미에서도 진일보한 시도다. 기존 한국 항공 재난/스릴러물에서 보기 어려운 여성 중심 영웅 서사를 구축했다.

공간 활용과 촬영 전략

<하이재킹>에서 가장 흥미로운 형식적 요소는 공간 활용이다. 여객기 내부라는 한정된 공간이 영화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며, 이 공간 안에서 다양한 시각적 리듬과 심리적 긴장을 창출한다.

촬영에서는 좁은 기내 통로와 좌석 사이에서 핸드헬드 카메라와 스테디캠을 병행 사용했다. 롱테이크와 급격한 클로즈업의 교차 사용으로 폐쇄감과 긴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기내 조명 변화(낮-밤 / 비상등 켜짐 등)가 심리적 상태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옥자와 승객들이 두려움과 용기를 오가는 과정에서, 색채적 대비가 감정 곡선을 시각화하는 데 기여했다.

캐릭터 구축과 배우들의 연기

하정우는 강필수 역에서 복합적 인간상을 구현했다. 납치범으로서의 냉혹함과 동시에 인간적 동기와 내적 분열을 드러내며, 단순 악역에 머물지 않는 깊이를 부여했다.

윤아는 옥자라는 캐릭터를 능동적 주체로서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초반에는 규칙과 매뉴얼을 따르는 평범한 승무원이지만, 점차 상황을 주도하고 승객 보호자로 성장하는 영웅적 서사의 축을 담당한다.

성유빈(서재민)은 조종사로서 기술적 능력과 감정적 취약성을 균형 있게 표현하며, 세 인물 간 심리적 텐션과 연대가 영화적 긴장의 핵심을 이룬다.

사운드 디자인과 편집 리듬

사운드 디자인은 <하이재킹>의 핵심적 성취 중 하나다. 엔진음, 기내 방송, 교신 노이즈 등은 리얼리즘을 강화하며, 심박음, 숨소리, 침묵을 적극 활용해 서스펜스 리듬을 구축한다.

음악은 비교적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적 전환점에서만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옥자의 고군분투 장면에서는 음악의 점층적 구성이 감정 고조를 뒷받침한다.편집은 빠른 컷과 롱테이크를 적절히 조율해 심리적 긴장을 유지한다. 납치 상황의 혼란스러움과 인물 간 교감의 순간들이 명확하게 구분되며, 폐쇄 공간 내에서의 시간적 리듬감을 효과적으로 설계했다.

한국형 항공 스릴러의 가능성

<하이재킹>은 한국 영화계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항공 스릴러 장르의 개척 사례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실화 기반의 사실성과 장르적 상상력, 폐쇄 공간 활용의 연출적 성취, 여성 중심 서사의 구축 등에서 장르적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향후 한국 영화계에서 항공·재난·서스펜스 장르의 다양화 가능성을 넓힌 사례로 평가되며, 영화전공자 관점에서는 형식적 미학과 내러티브 전략 모두에서 분석할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