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 스며든 살인의 윤리 / 한국 누아르 재해석 -
《회사원》은 2012년 개봉한 임상윤 감독의 누아르 액션 영화로, 살인을 일상업무처럼 수행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상화된 폭력, 그리고 자본의 윤리적 허위성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소지섭은 조직 내 엘리트 킬러 '지형도'를 연기하며,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감정을 잃은 채 살아가다 뜻밖의 관계를 통해 존재의 균열을 경험하는 남성을 묘사한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감성 멜로가 교차되며, 단순한 누아르를 넘어 도시적 인간성의 붕괴와 회복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 줄거리 요약: 킬러의 퇴사 계획서
지형도(소지섭)는 보험회사라는 위장 조직에 속해 있는 전문 킬러다. 낮에는 말단 사원처럼 근무하며 보고서를 쓰고 회의에 참여하지만, 실제 임무는 ‘제거’ 대상의 암살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타깃의 아들 ‘윤수’(김동준)와 그의 어머니 ‘유미연’(이미연)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미연은 형도의 인생에 진정한 감정과 윤리를 심어주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녀와의 관계는 곧 ‘회사’라는 체제와 충돌하는 전환점이 된다.
형도는 점점 감정을 되찾아가고,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조직은 그를 ‘퇴사자’가 아닌 ‘제거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른바 ‘전 직장 동료’들이 그를 쫓기 시작한다.
■ 한국 누아르의 정체성 실험
《회사원》은 헐리우드식 액션물의 겉모습을 띠지만, 사실은 한국 사회만이 가진 조직 문화, 권위주의, 감정 억제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뚜렷한 영화다.
지형도라는 인물은 ‘성실한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인을 정기 업무처럼 처리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윤리적 무감각과 도구화된 인간성을 정면으로 조명한 장치다.
임상윤 감독은 이 설정을 통해 “누가 죄인인가?”, “어떤 삶이 살인보다 비윤리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조직이라는 괴물: 퇴사와 죽음 사이
《회사원》이 가장 탁월한 지점은 바로 ‘회사’라는 개념에 대한 은유적 확장이다.
이 조직은 살인을 지시하고, 복무 태도를 평가하며, 성과를 바탕으로 생사마저 결정한다.
여기서 ‘퇴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이직이 아니다.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말은 곧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설정은 한국 사회에서 ‘직장’이 어떤 존재인가를 재조명하게 만든다.
■ 인간성의 회복과 감정의 귀환
영화 후반부, 유미연과 윤수와의 만남은 형도에게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심어준다.
그가 처음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고,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는 장면들은 감정의 귀환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이 감정은 체제에게는 위험한 요소다. 그래서 조직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형도의 최후는 감정과 윤리를 되찾은 한 인간이, 기계화된 조직을 상대로 벌이는 자멸적 투쟁이다. 이는 단순한 멜로적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할 댓가에 대한 질문이다.
■ 결론: 킬러는 누구였고, 우리는 어떤 회사원인가?
《회사원》은 액션 영화로 보이지만, 사실상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지형도는 단지 살인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악인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기능하도록 교육받은 또 다른 ‘성실한 직장인’이다.
그의 ‘퇴사’는 단지 탈출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은 화려한 액션 속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관객의 가슴에 남는다.